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alice Mizer (문단 편집) == 상세 == 극단적인 컨셉을 씬 내에서 유행시킨 최초의 밴드이다.[* 물론 [[세이키마츠]]와 같이 비주얼계 이외에도 극단적인 컨셉을 한 밴드가 있긴 하지만 하나의 씬 내에서 유행까지 시킨 밴드는 Malice Mizer가 최초.] 가장 대표적인 것을 언급하자면 인터뷰 당시 멤버들의 출신지를 모두 프랑스라고 답변 하거나 멤버의 신비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공식적인 미디어 자리에서 인터뷰 당시 '''말을 한마디도 안 한다거나'''[* Mana와 Kozi의 컨셉이었다. 현재 Mana는 Moi dix Mois 활동 때도 이러고 있다. 이런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비주얼계의 다른 팬들마저도 초기에는 병맛이었다는 평이었으나 지금은 그냥 대단하다고 한다. 당연 하지만 일상 생활은 멀쩡히 말 잘하고 다닌다. 목소리도 꽤 좋은 편. 그의 목소리는 공연 준비 영상에서 스탭들과 대화를 나누고 회의를 하는 장면 등에서 간혹 들을 수 있다.], Mana의 영향인지 초기에는 반드시 여장을 한 멤버가 있었다거나[* 믿기지 않겠지만 메탈 밴드인 [[Deathgaze]]마저도 인디즈 시절에 베이시스트인 코스케가 잠깐 여장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고스 로리타 컨셉으로. [[D(밴드)|D]]의 베이시스트인 츠네히토도 여장을 하게 된 계기가 비주얼계 밴드 내에서 잠깐이든 영원하든 여장을 하는 멤버가 있어야 한다는 불문율 때문이었다는 것을 보면 그런 불문율이 생기게 된 것 또한 Mana의 영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는 식으로. 좋은 반응이기도 했으나 같은 비주얼계 씬 내에서도 싫어하는 사람들은 싫어하는 등의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youtube(V9f1RmWy9zU)] 이것이 Mana의 컨셉 해당 영상의 인터뷰를 번역 하자면 Mana는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의 소리(음악의 표현)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변인은 Mana(님)의 의사의 기운을 받아서 그것을 일반인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언어로 말한다라고... 이렇게 20년 이상 컨셉 유지를 하니 대단하긴 확실히 대단하다. 기본적으로 유럽식 복식을 하고 있으며 고딕계라고는 해도 앨범의 성격에 따라선 흑복계라든가 밀실계와 중첩되는 부분도 있다. 라이브 때는 [[오페라]]를 방불케하는 무대가 인상적. Malice Mizer가 고딕계로 지향하게 된 것에는 리더인 Mana가 고딕 로리타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참고로 가끔 가다가 [[Mana(기타리스트)|Mana]]를 여성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남성이다'''.] 이 후 그는 [[고스로리]]계에서 굉장한 유명인이 되며 스스로가 패션 브랜드의 디자인과 기획을 하기도 하고, [[고스로리]]계 잡지에 자신의 기사를 게제하기까지 한다. Moi-meme-Moitie라는 [[고스로리]] 의류 브랜드까지 런칭한 상태, 가격은 꽤 비싼 편이다. --원래 로리타 의복들이 비싸긴 하지만.-- [[https://moi-meme-moitie.com/|Moi-meme-Moitie의 사이트]] 누군가가 비유 하기를 '비주얼 록의 붐을 [[X JAPAN]]이 일으켰다면, 그 막을 화려하게 내린 것이 이 Malice Mizer였다.'라고 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현재 특색이라고는 없이 성공의 아이콘일 뿐 잊혀지고 침체기의 비주얼계를 보면 그런 듯 하기도 하다.]] 2001년 12월 11일부로 활동 중지 선언을 했는데 그 전부터 1998년 12월 2대 보컬이었던 [[Gackt]]의 갑작스런 행방불명, 이듬해 1월 그의 탈퇴와 더불어 그해 6월 드러머였던 Kami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시련을 겪는다. --실상 Gackt의 Malice Mizer 활동 이외는 팬들조차 그다지 기억하지 않는 듯 하다.-- Gackt가 탈퇴하게 된 이유로는 몇 의견이 있다. 팬들의 해석에 따르면 Mana와 Gackt가 서로의 음악적 주관이 달라서 결별했다는 것과 당시 주간지 등에서는 Gackt vs 멤버+소속사 사장과의 갈등이 주된 원인이라 보도되었고 마지막으로는 Gackt의 자서전 '자백'에서 나온 내용으로 주로 Gackt가 작사를 작곡은 Mana나 Közi가 했었는데 Gackt가 싱글 'Le ciel'로 밴드에서 처음으로 작사ㆍ작곡을 한 후로 대중매체에서 Gackt만 조명하는 상황이 많아지게 되었고[* 메이저 싱글 중에 'Le ciel'이 오리콘 차트 순위가 가장 상위 곡이기도 하다.] Gackt와 멤버들이 헤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유로 탈퇴했는지 아직도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탈퇴 당시에는 멤버들이 팬들에게 보낸 메시지로 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특히 Gackt와 가장 친한 Kami의 메시지가 가장 강경해서 충격 받은 팬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예 사이가 틀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Gackt는 Kami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본명 우쿄 카미무라의 머릿말로 U+K 라는 제목의 곡과 회몽 〜for my dear〜(絵夢 〜for my dear〜)라는 곡[* 두 곡 다 Gackt 솔로 첫 음반 앨범 수록.]을 작사ㆍ작곡 했다. 각 곡은 극단적으로 컨셉이 달라 U+K는 긍정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희망을 주는 반면 회몽〜for my dear〜은 다시 만날 수 없고 꿈 속에서나 만날 수 있다고 슬픔 속에 절망하는 곡이다. 이 곡은 부르다가 실신해 실려 나간 적이 있을만큼 감정을 실어 부른다. 즉 두 곡을 모두 들어야 Kami에 대한 Gackt의 추모의 의미를 알 수 있으나 국내에서는 2016년까지도 U+K 한 곡만을 추모곡이라고 생각해서 오해가 많다. 아무튼 Gackt는 2015년 싱글 P.S. I LOVE U를 발표하면서 팬 인터뷰 회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담은 유서 같은 노래라고 말하였고 재차 Kami에 대한 질문을 듣고 "사실 아직 Kami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다."라고 인터뷰를 잠시 멈추고 눈물을 보이기도. 실제로 술자리에서도 Kami 이야기를 하면 갑자기 울기도 하며 Kami를 안 좋게 이야기하면 버럭 화를 낸다는 이야기는 스텝진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편. 갑작스러운 탈퇴 때문에 Gackt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갖는 사람도 Gackt가 독학으로 드럼을 배운 Kami에게 드럼을 가르치기도 하고, Mana와 Közi 위주였던 Malice Mizer의 활동에 기여하는 등 그 덕분에 Malice Mizer의 세계관이라든가 음악성의 깊이가 심오해졌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정도. 게다가 비교적 불안했던 창법을 구사한 그 전 보컬인 Tetsu에 비해[* 다만 테츠의 보컬은 각트에 비해 옥타브가 높아 고음역대에서 돋보이는 특징이 있으며, 이 부분을 좋아하는 코어 팬들도 상당하다.][* 그래도 테츠 또한 ZIZGO, NIL과 같은 빅 커리어를 쌓으면서 기량을 꾸준히 올려서, 2013년에는 초기 일본 헤비메탈 씬을 대표했던 [[DEAD END]]의 트리뷰트 앨범에 [[hyde]], [[카와무라 류이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참여했다.] 좀 더 안정적인 음역대와 괜찮은 작사, 작곡은 확실히 인정받고 있다. Gackt 탈퇴 이 후에도 Malice Mizer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활동을 하였지만 Gackt 팬들은 Gackt를 따라 떠난 경우가 대다수였고, 이후 Pride of mind라는 밴드[* 당시 일본에서 흔치 않던 '''다크 웨이브'''와 밴드 스타일의 댄스 음악을 시도한 실험적인 성향의 인디 밴드이다.] 출신인 Klaha라는 보컬을 영입해 장미의 성당이나 Garnet~禁断の園へ~ (Garnet~금단의 동산에~) 등 나름 괜찮은 곡들을 발표했지만 꽤 중후한 보컬인 Klaha의 영입만으로는 Gackt가 보컬로서 활동하였던 시절의 아우라를 대신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2016년까지 Gackt가 보인 엄청난 활동과 라이브 공연의 질. Gackt의 작사ㆍ작곡ㆍ무대 구성과 편곡ㆍ촬영ㆍ화면 구성을 보면 당연한 평가. 자세한 것은 [[각트]] 참조.] 하지만 어디까지나 각트에 비해서지, 그렇다고 해서 클라하가 보컬과 밴드의 구성원으로서 역량이 전혀 없었다는 건 아니다. MALICE MIZER의 활동 종료 이후 클라하는 각트의 솔로 활동에 자극을 받아 '''전곡을 자신이 작사ㆍ작곡 및 프로듀싱'''한 정규 앨범 'Nostal Lab'과 미니앨범 'Märchen'을 발매해 각트 못지 않은 천재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 앨범의 특징은 말리스 미제르 시기의 악곡에 비해 좀 더 댄서블한 느낌이 있는 것으로, 좀 더 대중성이 있는 곡들이 포진되어있다.[* 이 부분에 있어선 말리스 미제르 전의 소속 밴드인 Pride of mind의 영향이 있는듯 하다.] 한편 기타리스트 Mana의 경우는 록 팬들에게 호불호가 굉장히 구분되는 멤버인데, 그 이유가 기타를 MR로 재생하고 본인은 라이브 무대에서 기타 연주 대신 춤만 춘다는 이유 때문. 록 밴드가 아닌 비주얼계 음악의 그룹으로 보았을 때는 별 문제는 않을 것 같지만 일단 밴드의 형태인 그룹이므로 라이브에서 기타 연주를 하지 않는다는 건 기타리스트로서 밴드의 모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Moi dix Mois에서는 팔이 빠지도록 죽어라고 기타를 연주하는 Mana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현재 리더 Mana는 2003년 3월 19일, 자신의 생일에 프로젝트 밴드인 [[Moi dix Mois]]를 결성하여 고딕계 비주얼 록 밴드의 계보를 이어나가는 중이며 Mana와 더불어 음악적인 추를 유지하던 기타리스트 Közi는 Eve of Destiny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유럽 등지에서 활동 중. 베이스인 Yu~ki와 3대 보컬인 Klaha의 경우는 음악적인 활동이 보고 되지 않은 채 소식이 요원한 상태. 오히려 클라하의 경우에는 2007년을 끝으로 음악 활동을 접고 [[요코하마]] 일대에서 바텐더로 활동한다는 소식이 있곤 했다. 현재는 어떻게 지내는지 불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